우주로 쏘아 올린 망원경
어두운 배경 위 몇 개의 작은 점들과 함께 찍힌 네 개의 밝은 점. 천문학의 새 시대는 1990년 5월 20일 대중에게 공개된 시답잖은 사진한 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것은 우여곡절 끝에 우주로 쏘아 올린 허블 우주 망원경이 전송한 최초의 사진 <퍼스트 라이트First Light〉였다.
우주에 커다란 망원경을 설치하자는 생각을 맨 처음 한 것은 1946년 미국의 천문학자 라이먼 스피처 Lyman Spitzer 였다.
사실 당연한 생각이었다.
지상에서는 지구를 둘러싼 대기가 천문학적 관측을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대기 바깥에 망원경을 설치하면 우주의 별들을 가감 없이 볼 수 있을 것이고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1940년대에는 아직 우주 비행이 첫발을 내딛지도 못한 시점이라,
우주에 망원경을 설치한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프로젝트는 그 뒤 1980년대에 현실화되었고,
1990년 4월 25일 유명한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Edwin Powell Hubble 의 이름을 딴 망원경이 드디어 우주로 발사되었다.
허블 우주 망원경 시스템의 테스트 촬영 대상으로 용골자리가 선택되었다.
NASA 내부에서 첫 관측 사진을 열어볼 때 기자들을 동석시킬 것인가를 두고 논의가 있었다.
천문 사진, 특히나 테스트 목적으로 찍은 천문 사진들은 처음에 볼 때 정말 시시껄렁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진상의 오류를 제거하고, 여러 사진을 결합해야만 비로소 그럴듯하게 보이게 된다.
'내놓을 만한'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작업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허블의 첫 관측 사진은 학자들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것일지 몰라도 대중에게는 정말 재미없어 보일 것이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허블의 첫 사진이 도착했을 때 순식간에 굉장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허블이 보낸 영상은 지구에서 찍은 사진들보다 해상도가 높긴 했다.
영상에 보이는 가장 밝은 별은 아스피디스케(용골자리 요타성)였다.
이 별은 육안으로도 잘 보이는 밝은 별이기에 허블의 첫 촬영 대상으로 선정되었는데,
문제는 이 별이 기대만큼 선명하게 포착되지 않은 것이다.
이상적인 광학기기라면 별이 빛의 점으로만 보여야 할 것이었다.
허블은 아스피디스케의 빛의 최소 70퍼센트 정도를 작은 영역에 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었다.
그런데 첫 영상에서 아스피디스케의 빛은 그보다 열 배는 넓은 지역에 퍼져, 주변 별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큰돈을 들여 오래 계획한 우주 망원경이 이렇게 흐린 이미지를 보여주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이유는 코믹한 동시에 비극적이었다.
망원경 렌즈의 오류를 발견하는 기능을 하는 기기 자체에 오류가 있던 것이다.
이런 오류를 바로잡기까지 3년이 걸렸다. 다시 스페이스 셔틀이 우주로 날아갔고,
우주 비행사들이 수정 시스템을 설치했다.
그리하여 허블 망원경은 안경을 쓰게 되었고 그 이후로 선명해진 영상을 전송하면서 기대에 걸맞은 혁명적인 기기로 자리매김했다.
허블 우주 망원경은 우리의 기대대로 기능하기까지 어느 정도 험란한 길을 거쳤다.
그러나 그 이후 30년간 허블 우주 망원경이 관측한 영상들은 그동안의 모든 노고를 보상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허블의 영상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상상에 혁명적인 불씨를 지폈다.
허블망원경이 전송해준 데이터로 1만 개 이상의 논문이 쓰였을 뿐 아니라,
인류가 우주를 보는 시선 자체도 변화했다.
허블이 찍은 별, 은하, 성운의 환상적인 영상들은 우주에 대한 집단적 표상을 만들어냈다.
용골자리를 찍은 시답잖은 흐릿한 영상은 이후 허블 우주 망원경이 보여준 활약의 시초였다.
허블은 원래 기대했던 15년의 수명을 훨씬 뛰어넘어 작동했고, 2020년 탄생 30주년을 맞았다.
이제 임무종료 카운트다운에 들어갔고 수년 내에 임무를 종료할 예정이다.
나사는 그의 스페이스 셔틀 프로그램을 조종하여, 망원경을 더 이상 손보거나 수리하지 않기로 했다.
늦어도 2024년이면 허블 우주 망원경은 추락할 것이고 지구에 근접하면 대기와 마찰을 일으키며 파괴될 것이다.
허블이 처음으로 관측했던 용골자리의 아스피디스케처럼 밝게 빛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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